[그때의 사회면] 메이퀸 살인사건
손성진 기자
수정 2017-01-16 00:01
입력 2017-01-15 17:56

유씨는 호텔 나이트클럽에 이씨와 함께 있다가 객실로 끌려갔다. 이씨는 유씨를 3시간 동안 감금하고 결혼해 달라고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유씨를 욕보이려 했고 반항하자 목을 졸랐으며 허벅지를 흉기로 찔렀다. 놀란 유씨가 실신하자 이씨는 죽은 줄 알고 창문 밖으로 유씨를 던져 버렸다. 투신 자살로 위장한 것이다. 그런 다음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에서 창밖으로 던진 사실을 자백했다. 법원은 이씨가 처음부터 유씨를 죽이려 한 것은 아니고 죽은 줄로 잘못 알고 던졌다고 판시하면서 살인죄 아닌 강간치사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고법은 혈흔이 없고 흉기가 발견되지 않는 등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특히 이씨가 고문에 못 이겨 검찰과 경찰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며 법정에서 범행을 모두 부인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대법원은 고법의 무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파기했고 결국 이 사건은 대법과 고법을 세 차례나 오르내린 끝에 이씨에게 10년형을 확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건은 치열한 법리 공방 끝에 결국 검찰의 승리로 끝났다. 부검과 법의학을 동원해 유죄를 이끌어 낸 지휘 검사는 훗날 검찰총장과 안기부장을 지낸 서동권 검사(현 변호사)였다. 2008년 검찰은 역대 20대 사건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 사건도 후보에 올랐다. 애초 20위권에 들었으나 자화자찬식 사건은 배제한다는 이유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그래도 과학수사와 증거수사의 관점에서 큰 교훈을 남긴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2017-01-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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