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카데미상’ 중국에 저항하다

이창구 기자
수정 2016-04-04 23:40
입력 2016-04-04 22:48
中 통제 미래 그린 ‘10년’ 작품상…모든 中매체들 영화제 보도 안 해

홍콩 AP 연합뉴스
영화 ‘10년’은 중국의 통제가 강화된 2025년 홍콩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다. 중국 표준어(普通話)를 하지 못해 차별을 당하는 택시 운전사,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돼 단식투쟁을 벌이다 사망한 청년운동가 등이 등장한다. 제작비 50만 홍콩달러(약 7000만원)의 저예산 영화인데, 9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600만 홍콩달러(약 8억 4000만원)의 흥행 실적을 올렸다. 제작 준비를 하던 2014년 가을 민주화를 요구하는 ‘우산혁명’이 일어났고, 영화가 상영될 때쯤 홍콩 서점 주인들이 줄줄이 사라지는 등 중국의 홍콩 통제가 부쩍 심해져 홍콩인들이 더 뜨겁게 반응했다.
영화가 뜰수록 중국은 민감해졌다. 관영 환구시보는 지난 1월 22일 사설에서 “‘자학의 바이러스‘는 홍콩에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자 TV와 인터넷매체가 시상식을 생중계하는 것을 금지했다.
생중계 계약금까지 지불한 포털 텅쉰이 갑자기 계약을 파기해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서 이 영화제가 생방송되지 못했다. 4일 모든 중국 매체는 약속이나 한 듯 영화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과거 홍콩은 아시아 영화의 중심지이자 중국 영화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최대 영화시장으로 떠오른 현재 홍콩 영화계는 중국 자본과 권력의 협조가 있어야 유지될 지경에 빠졌다. 영화 ‘10년’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로 끝난다. 영화와 같은 현실이 펼쳐지는 지금, 10년 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홍콩인들에게 묻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2016-04-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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