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 없는 불안사회에 몰아친 한국의 ‘교황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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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4-08-18 16:03
입력 2014-08-18 00:00

“벼랑끝 경쟁 내몰린 시민들, 사회 큰어른 부재 속 ‘메시아’ 염원”

기댈 곳이 없어서일까. 18일 출국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 한국 방문은 마치 극심한 가뭄에 내린 단비인 듯했다.

인종과 지역, 종교마저 초월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교황에 대한 관심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보다도 폭발적이었다.

뜨겁게 불어닥친 교황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사람 자리에 돈이 올라앉고, 사회적 안전망이 실종되면서 무한 생존경쟁이 유일한 작동 원리로 자리잡은 한국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안감이다.

경제 성장과 함께 전반적 생활수준은 높아졌지만 행복지수는 그다지 높지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개개인의 머릿속에 항상 도사린다.

300명이 넘는 인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지하철 사고, 병영 내 총기난사처럼 대형 사고가 일상생활에서 끊이지 않는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 또한 생존을 위협한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 진학에 성공하지만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일자리 찾기도 힘들지만 가까스로 취직을 한다 해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처지다. 임금노동자 3명 중 한 명 이상이 비정규이란 현실은 남의 얘기일 수 없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 또한 구성원들이 쉴 틈을 조금도 허용치 않는다.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의 말처럼 남한과 북한, 보수와 진보, 자본과 노동, 성장과 균형, 자본, 개발과 보존, 안보와 인권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마지막 행사로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초대받은 참석자의 면면은 한국사회의 갈등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미사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해군기지와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을 벌여 온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 주민들, 용산 참사 피해자, 새터민, 납북자 가족 등 이 땅에서 다양한 형태의 갈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초대받았다.

갈등이나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고 국민을 보듬어야 할 정치권과 국가 기관은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는커녕 또다른 갈등 요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국민에게 큰 충격과 절망을 안겨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도 큰 불안 요소는 분단과 이에 따른 남북 대치 상황이다. 늘 잠재적 위험에 시달리는 불안의 일상화는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이지만 국민들이 기댈 만한 사회의 큰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성철 스님이나 한경직 목사,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지도자로뿐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됐다. 그런 역할을 물려받을 만한 인물의 부재다.

이럴 때 ‘가난한 자의 벗’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타났다. 가난한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 양떼 속에서 양 냄새 나는 목자를 부르짖는 그에게 한국인들은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쏟아내는 메시지와 그의 행보는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가려운 등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교황은 이웃은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서로 도우며 함께 손잡고 가야 할 연대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물신주의와 비인간적인 경제 독재, 부유층과 대기업의 논리였던 ‘낙수효과’에 대한 준엄한 질타는 “윗접시에 물이 차면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랐던 사람들에게 참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와 화해 정신 또한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전쟁의 상흔과 공포에 시달려 온 한국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줬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그의 인간미는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다. 특히 어린이와 장애인, 가난한 사람처럼 세상에서 무시받고 소외되기 쉬운 약한 이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분명히 한국 지도자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면모였다.

더구나 올들어 방한 사실이 발표되면서 교황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가면서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가 한국을 찾자 열풍이라 할 정도로 인기가 치솟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방한 요청은 천주교계가 했지만 종교의 벽을 넘어 많은 이들이 그의 한국행을 바랐던 것은 마음속에서나마 ‘메시아’를 접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인 것은 종교지도자의 방문이 사회적 현상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청빈하고 소박한 성품을 가진 교황이 제기하는 빈곤, 사회불평 같은 사회 문제와 평화 메시지에 공감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한 번의 방한으로 사회 분위기 자체가 바뀌기는 힘들지만 한국 지도층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인기가 많은 종교지도자의 메시지에 신경을 전혀 안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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