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미얀마 지진으로 부서진 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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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4-01 17:12
입력 2025-04-01 17:12


“가능하면 네피도에서 빨리 벗어나면 좋겠어요.”

기자가 이용한 차의 운전기사 아아웅(48) 씨가 1일 오전(현지시간)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 시내로 들어서자 한 말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얀마 남단에 있는 최대 도시 양곤을 출발, 강진 직격탄을 맞은 만달레이까지 누비며 불평 없이 운전했던 기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아했다.

지진으로 차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도로도, 곧 쓰러질 것 같은 빌딩 옆도 씩씩하게 운전했던 그는 하지만 “네피도는 군인과 경찰이 다 감시하는 곳이고 괜히 시비가 걸리면 너무 힘들어진다”고 우려했다.

네피도의 상징인 야자 타니 대로에 들어서자 지난달 28일 발생한 규모 7.7 지진으로 도로가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틈은 모래를 급히 채워 놓은 모습이었다. 길옆에는 쓰러진 가로등도 많았다. 이번 진앙에서 약 250㎞나 떨어진 곳이지만 지진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야자 타니 대로는 정부 청사와 의사당 등으로 이어지는 길로 왕복 20차선의 활주로 같은 대규모 도로다. 하지만 오다니는 차는 거의 없었고, 지진으로 파손된 도로를 정비하는 사람들과 총을 든 군인들만 보였다.

도로를 따라 청사 쪽으로 가보자고 하자 아아웅 씨는 이곳에 들어가려면 미리 허가받아야 한다며 더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야자 타니 대로를 빠져나와 네피도 중심부 더삐공 지역으로 이동하니 아웅산(1915∼1947) 장군 동상 앞 계단도 이번 지진으로 금이 가고 부서진 게 눈에 들어왔다.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 ‘독립영웅’이자 ‘국부’로 현재 군사정권에 의해 수감 중인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의 아버지다.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미얀마 곳곳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미얀마 군의 초대 최고사령관이기 때문에 군부도 자신들의 뿌리로 여긴다.

네피도 분수공원이나 국립 박물관 등 유명 관광지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지진 때문에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네피도 스부디리 지역의 한 사원에서 불탑이 파손된 모습이 보여 사진을 찍기 위해 차에서 내려 휴대전화를 들자 경찰이 “삑삑” 호각을 불며 다가왔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신호였다. 네피도 분수 공원 앞에 내려 지진으로 파손된 입구를 찍을 때도 멀리서 경찰이 호각을 불어댔다.

현지 가이드는 “미얀마 군부 입장에서 네피도가 지진으로 파손됐다는 것을 외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네피도에는 CCTV가 많으니 차에서 내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차에서도 너무 대놓고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사는 주택가에 가보려 했지만 주요 도로를 벗어나는 길마다 군인들이 서 있어서 접근을 막았다. 경찰과 군인이 30m마다 서 있어 주민들과 대화하는 것도 어려웠다.

멀리서 주민들이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모습이 보였다.

현지 가이드는 “네피도에는 사복 경찰이나 군인도 많다”며 “네피도 사람들은 누가 군인이고 경찰인지 알 수 없으니 집 밖에서는 평소에도 말조심한다. 인터뷰는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네피도의 한 종합병원이 무너졌는데도 환자 가족들에게는 모두 퇴원했다고 거짓말하고, 외부인 출입을 막은 채 방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가 도는 것은 미얀마 정부가 특히 네피도에서 언론을 통제하면서 제대로 된 현지 소식을 알 수 없어서다.

현지 독립언론 ‘미얀마나우’에 따르면 미얀마 군사정권 대변인 조 민 툰은 지난달 30일 “여기 와서 머물고 쉬고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며 물과 전기, 숙박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신 기자들의 취재 허가를 거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날 만달레이에서 네피도에 들어올 때부터 삼엄한 경비를 느낄 수 있었다. 네피도 내부로 들어갈수록 총을 든 군인과 경찰이 많아졌고, 검문도 여러 번 받았다.

그때마다 현지 가이드는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사용하지 말고, 영어나 한국말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군인에게는 “군 관련 업무로 왔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통과했다.

호텔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 낡은 호텔에 들어서자 “오후 9시부터는 모든 전력이 끊긴다”고 말했다.

차에서 자야 할 상황이어서 상관없다고 말하자 여권을 요구했고, 받은 여권은 퇴실할 때 돌려준다고 말했다. 현지 가이드는 “외국인이어서 이민국으로 보고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호텔에 들어선 지 1시간 만인 오후 9시가 되자 실제로 불이 꺼졌다. 명색이 수도인데 온 도시가 캄캄해졌다. 통신도 두절됐다.

기사 송고를 위해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들고 안테나를 찾아 호텔 근처를 돌아다니자 경비가 다가오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노 인터넷”이라고 말했다.

전기는 다음날 오전 7시가 되자 돌아왔고 통신도 재개됐다.

호텔 직원은 “전기는 해가 진 후 2시간 정도만 들어온다”며 “원래도 전력 공급이 어려웠지만 지진 이후로 더 안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군부는 2005년 전격적으로 양곤에서 네피도로 수도를 이전한다고 발표했고, 이후 왕복 20차선 도로나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의사당, 대통령궁, 관청 등을 건설했다.하지만 급하게 도시를 만드느라 아직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인구는 약 100만명이며 2021년 쿠데타로 재집권한 미얀마 군부는 네피도에 대한 외국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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