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앞 ‘폭풍전야’...흉기될만한 입간판 치우고 학교는 선고일 휴무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김우진 기자
수정 2025-03-12 19:27
입력 2025-03-12 19:27

시위자끼리 폭행·오가던 관광객 다쳐
구청, 선고일 대비 길거리 입간판 철수 요청
경찰은 주유소·문화유산·상점 폐쇄 권고

이미지 확대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헌법재판관의 관용차로 추정되는 차량이 지나갈 때 대통령 탄핵 각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헌법재판관의 관용차로 추정되는 차량이 지나갈 때 대통령 탄핵 각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를 불태우자”, “대통령을 파면하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탄핵 찬반 집회가 격화된 이곳은 이미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험악한 욕설과 고성이 끊이지 않는 ‘폭풍전야’ 상태였다. 전날도 집회 참가자끼리 서로 주먹을 날리는 등 난동이 벌어졌다. 일본인 관광객은 빼곡한 인파에 밀리는 바람에 얼굴이 찢어져 구급차까지 출동했다.

연일 ‘과격 시위’가 이어지면서 탄핵심판 선고 당일 경찰은 헌재 인근 주유소와 공사장, 문화유산, 상점 등의 휴업과 폐쇄를 권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배달 기사로 위장해 헌법재판관 테러를 모의한다는 첩보까지 들어와 비상”이라며 “내전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이날 만난 공사장 관리자 이모(58)씨는 “흥분한 시위대가 각목 등 자재를 가져가서 휘두를까봐 작업을 멈출지 구청과 상의중”이라고 전했다. 근처 학교와 유치원들도 안전을 우려해 선고일 문을 닫기로 했다.

헌재 인근에서 13년째 소품샵을 운영 중인 김윤성(41)씨는 이날 가게 앞에 놓여 있던 진열대와 화분 등을 안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전날 종로구청에서 길거리 입간판 등 흉기가 될 수 있는 물건을 치울 것을 권고해서다. 8년 전인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당일과 이후 시위대를 비롯해 총 4명이 사망하는 등 폭력 집회의 후폭풍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 집회 참가자가 경찰 버스를 탈취해 차벽을 들이받는 바람에 대형 스피커가 떨어져 70대 남성이 숨졌다. 김씨는 “구청 권고가 아니었어도 선고 당일에는 위험할까 걱정돼 모두 가게 안으로 들여놓으려 했다”며 “미리 치워두는 게 낫겠다 싶어서 지금 정리 중”이라고 했다.

내전이라도 일어날 듯한 험악한 분위기에 구청과 경찰 등은 선고 당일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에 대비하고 있다. 종로구청은 인근 상점에 밖에 내놓은 물건들을 치워달라고 요청했다. 철수 대상 물품은 입간판, 화분, 의자 등 통행을 방해하거나 무기로 쓰일 수 있는 물건들이다. 구청은 또 헌재 내 1㎞ 거리에 있는 노점상에도 ‘이날은 영업을 안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영업 자제를 요청했다. 시위대가 시너통 등을 탈취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경찰은 서울시에 운현궁을 선고 당일 폐쇄하도록 권고했고 시는 이를 수용했다. 서울시는 “문화유산 훼손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직원들도 내부에서 비상경계 근무를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헌재 인근에 있는 서울공예박물관과 경복궁 등도 선고 당일 운영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유치원과 학교도 등하교나 수업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선고일 문을 닫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유치원 2개원(재동초병설유·운현유), 초등학교 3개교(재동초·교동초·운현초), 중학교 2개교(덕성여중·중앙중), 고등학교 3개교(덕성여고·중앙고·대동세무고), 특수학교 1개교(경운학교) 등 11곳이 쉰다.

이미지 확대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등이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각하 촉구 2차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2025.3.12 [공동취재]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등이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각하 촉구 2차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2025.3.12 [공동취재]


경찰은 선고 당일 헌재와 광화문 등 서울 도심에 40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대응방안을 세우고 있다. 특히 헌재를 둘러싼 주변 100m는 2겹 이상의 경찰 차벽,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기동대를 배치해 시위대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진공 상태’로 만들 예정이다. 헌재 주변 1항공마일(1854m) 이내는 ‘임시 비행금지공역’으로 지정해 드론 비행 등도 차단하기로 했다.

경찰은 대규모 집회에 대응하기 위해 휴직·연가·병가 등을 제외하고 각서별로 최소 60명 이상을 유지하라는 지침도 내렸다. 또 이날부터 헌재 100m 밖 구역인 종로구와 중구 일대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현장 야외기동훈련(FTX)도 시작했다. 기동대뿐만 지구대·파출소 인력을 차출해 꾸리는 임시부대를 대상으로 집회 대응 훈련도 진행하고 있다. 시위대가 흉기를 사용하면 기동대는 경찰봉이나 방패로 밀어내고 캡사이신도 사용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수사기관과 관계기관이 폭풍전야의 분위기 속에 만전을 기울이는데 반해 국정혼란을 막고 민심을 봉합해야 할 정치인들이 집회에 합세하며 외려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형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헌재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선동적인 발언을 하면 대중들이 과격행동을 하게 조장할 수 있고 폭력 사태까지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우진·김주연·송현주·김지예 기자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121년 역사의 서울신문 회원이 되시겠어요?
닫기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