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모자, 사자 러그…외교관 이삿짐에서 쏟아진 야생동물 가죽 [여기는 남미]
수정 2025-03-18 15:53
입력 2025-03-18 15:53

해외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칠레 외교관이 고가의 모피를 대량으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돼 당국의 수사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외교관이 소유한 모피는 칠레가 자국법으로 보호하는 야생동물을 이용한 것이라 징역형에 내려질 수도 있다.
현지 언론은 “문제의 외교관은 단순한 신고 누락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물량이 많은데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모피로 만든 제품이 다수 포함돼 있어 고의성이 의심되고 있다”면서 17일(현지시간) 관련 사건을 보도했다.
수사를 받는 외교관은 헝가리 주재 칠레대사관 근무를 마치고 지난해 귀국해 현재 칠레 외교부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외교관이 헝가리를 떠날 때 선박으로 이삿짐을 부쳤는데 여기에 신고하지 않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이중 모피 제품은 밍크코트 1점, 여우 가죽으로 만든 모자 6개, 가죽으로 감싼 고가의 물통 4개, 야생동물 가죽으로 만든 러그 5점 등 모두 16점이었다.
당국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가죽으로 만든 러그에는 사자와 얼룩말 등 야생동물의 머리가 달려 있다. 사진을 본 이들은 “영화 소품에서나 본 러그”, “아직도 저런 제품들이 만들어지다니 놀랍다” 등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으로 보호되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 여럿 발견돼 논란이 되고 있다.
칠레는 국내법으로도 국제협약이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있다. 야생동물이나 모피를 거래하다가 적발되면 형사처분을 받는다. 현지 언론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200~1만 4500달러(약 1000만~2100만원) 벌금형이 내려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당사자는 “어쩌다 보니 신고를 누락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외교부 소식통도 “단순 실수라면 행정법에 근거한 처분에 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관은 사건을 밀수로 규정하고 있다. 칠레 세관은 “단순 신고누락이어도 밀수가 된다”면서 “외교관에게 주어지는 면세특혜가 국제협약으로 보호받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상품을 밀수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문제의 외교관은 1987년부터 주재원 생활을 시작한 베테랑이라 신고 누락이라는 실수를 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칠레 정부는 경찰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에 맞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임석훈 남미 통신원 juanlimm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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