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투수 공포로 정신과 상담… 날 일으킨 건 가족”
수정 2013-12-31 03:47
입력 2013-12-31 00:00
귀국한 추신수가 말하는 텍사스 이적 뒷이야기
“애리조나 시간으로 새벽 1시 30분이었어요. 저는 에이전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고, 아내는 피곤했는지 잠시 잠이 들었죠. 계약 소식에 아내와 앉아 13년간의 미국 생활을 떠올렸어요. 한 5분 동안 많은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목표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요. 눈시울이 붉어지며 ‘또 다른 야구 인생이 시작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영조 기자 kanjo@sportsseoul.com
추신수는 올 시즌 .423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조이 보토(.435·신시내티)에 이어 내셔널리그 2위에 올랐다. 지난 시즌(.373)보다 무려 5푼이나 끌어올렸다. 추신수는 “투스트라이크 이후 타격 자세에 변화를 줬다. 배트를 짧게 잡고 스탠스도 넓혀 최대한 공을 오래 보려고 했다. 올 시즌에는 톱타자를 맡았던 만큼, 과거 마이너리그 시절 배웠던 것을 떠올렸다”고 비결을 설명했다.
추신수는 기자회견 내내 ‘아내’와 ‘가족’이란 두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먼저 아내에게 “세 자녀가 태어나는 동안 한 차례도 산후조리를 돕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는 옆에 있었지만 경기 때문에 곧바로 떠나야 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며 미안해 했다. 새 둥지로 텍사스를 선택한 것도 “이기는 팀이 첫 번째 기준이었고, 가족들이 연고지에서 편안히 살 수 있는지가 두 번째였다”고 말했다.
사실 추신수가 고비를 극복한 건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신수가 가장 힘겨웠던 시기는 좌투수에 약점을 보였을 때. 그는 “좌투수가 포수 사인을 받기 위해 움직이기만 해도 공이 내게 날아오는 느낌이었다. 타격 전부터 겁을 먹고 있었다. 반쪽 선수가 될까 걱정됐다. 정신과 상담까지 받았다. ‘내가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 가족은 길바닥에 나앉는다’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2007년 팔꿈치 수술 뒤 국내로 돌아갈 결심을 했지만 아내의 만류로 도전을 계속했다”고 털어놨다.
추신수는 뉴욕 양키스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자세히 밝혔다. 그는 “월드시리즈 이후 10여개 팀이 관심을 보였고, 조건이 맞는 팀으로 좁히다 보니 세 팀이 남았다. 양키스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어떤 제안에 대해 바로 ‘예스’, ‘노’라고 답하지는 않는다. 양키스는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추신수는 지난 28일 입단식에서 론 워싱턴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내년 시즌 1번 타자 및 좌익수로 기용될 것이라는 구상을 전달받았다. 그는 “올 시즌 중견수로 이동하면서 굉장한 부담을 느꼈다. 타격에 신경 써야 하는데 수비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러나 처음치곤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코너 외야수는 이미 서 봤던 자리인 만큼, 수비 위치 변경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추신수는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을 때까지 MLB에서 뛰는 게 목표”라며 국내 복귀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은 뒤 “올해 100홈런-100도루를 달성했으니 200-200, 300-300으로 나아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2013-12-31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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