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앉거나 마주 앉거나… 中 ‘상석의 정치학’

윤창수 기자
수정 2018-03-20 12:19
입력 2018-03-19 23:26
시진핑 주석이 머무는 권위의 공간 ‘푸젠팅의 역사’
베이징 인민대회당은 중국의 정치와 외교의 심장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처럼 국가의 근간을 세우는 정치 활동이 이뤄지며, 전 세계 각국과의 주요 회담이 이루어진다. 그런 만큼 인민대회당은 그 자체로 ‘권위와 의전’의 상징이기도 하다. 중국 지도자로서의 힘을 대내에 과시하며, 그 권위를 바탕으로 의전이 이뤄진다. 대지 면적 15만㎡, 건면적 17만㎡에 이르는 거대한 3층 규모로 내부에는 중국의 각 성(省)을 대표하는 33개의 큰 방이 있다. 각 방은 지방의 특징을 반영한 대형 그림과 장식 등으로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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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특사 정의용 접견하는 시진핑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3월 12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접견하고 있다. 특사는 해당 국가의 정상급 예우를 해 오던 관행을 깨고 시 주석이 상석에 앉아 있다. -
北특사 최룡해와 마주 앉은 시진핑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2013년 5월 시진핑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를 예방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때는 시 주석이 특사단과 마주 앉았다.
연합뉴스 -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인민대회당 푸젠팅에서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을 만나고 있다. -
이로부터 5년 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로 같은 장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연합뉴스 -
시진핑 주석이 푸젠팅에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2017년 9월)을 만나는 모습. -
사민당 대표단(2015년 7월) 을 만나는 모습. -
브릭스 대표단(2017년 6월) 을 만나는 모습. -
시진핑 국가주석이 푸젠팅에서 량전잉(梁振英)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2014년 11월)을 만나고 있다. -
시진핑 국가주석이 푸젠팅에서 대만 국민당 대표(2015년 5월)를 만나고 있다. -
시진핑 국가주석이 푸젠팅에서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무부 장관(2016년 10월)을 만나고 있다. -
시진핑 국가주석이 푸젠팅에서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2017년 8월)을 만나고 있다. -
2017년 5월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총무회장 등을 접견하는 모습.
푸젠팅(福建廳)은 이 가운데 권위의 핵심이랄 수 있다. 정문이랄 수 있는 북문 왼편의 ‘작은 방’이지만, 국가주석이 머무는 곳이어서다. 최근 한·중 간의 두 차례 외교 결례 논란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푸젠팅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푸젠팅은 인민대회당의 수많은 방 가운데 사용 빈도가 가장 높다. 국가 정상 간 회담은 주로 둥다팅(東大廳)에서 열리고 이후 만찬이나 오찬은 맞은편 시다팅(西大廳)에서 이뤄진다. 푸젠팅에서도 정상회담은 이뤄지지만 기본 용도는 주석의 준비실이자 접견실이며 휴게실이다. 그래서 이 방은 기본적으로 이른바 ‘소파 세팅룸’이다. 외국 정상을 접견할 때 정중앙에 나란히 놓은 2개의 소파에 중국 국가주석과 외국 손님이 앉고, 배석자들은 양쪽으로 길게 늘어앉는다. 실무자들은 배석자 뒤편에 앉는다. 공식 회담을 할 때는 이곳에 테이블을 놓고, 양쪽 면에 마주 보고 앉아 왔다.
이처럼 중국이 ‘나란히 앉거나’, ‘마주 보고 앉는’ 관행을 깼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지난해 5월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이곳을 찾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몇 명의 일행 앞에 긴 테이블이 놓였고, 전에 없던 ‘상석’(上席)이 생겨났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푸젠팅에서 후진타오 당시 주석을 접견할 때나, 2013년 박 전 대통령의 특사로 인민대회당을 찾은 김무성 의원이 시진핑 주석을 만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만남이었다.
‘상석’의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7월 브릭스(BRICS)가 파견한 대표들을 만날 때 시 주석은 상석에 앉았다. 이에 대해서는 브릭스 대표와의 만남에서 상석에 앉은 것은 이해찬 특사 홀대 논란 이후, ‘비슷한 사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 섞인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한 국가의 정상이 보낸 특사는 해당 국의 외교장관보다 격이 높다. 정상에 준해 예우를 하는 게 국제적 관행이다. 지난해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단을 마주 보고 앉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시 주석은 프랑스 외무부 장관, 미 합참의장을 만날 때도 관행을 깨지는 않았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2018-03-2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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