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이 하나의 설정을 1분간 확인할 경우 매일 24시간씩 일주일에 7일을 꼬박 일해도 모든 설정을 다 확인하는데 물리적으로 2천만년이 걸리는 상황.
”2천만년간 해야 할 일을 20분 만에 해야 하는” 이들이 암호 해독에 열중할 때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은 “사람으로 기계를 이기는 게 아니라 다른 기계로 기계를 이기겠다”며 아예 모든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데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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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스틸 이미지. 조안 클라크 역의 키이라 나이틀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겸손함과 사교성 모두 0인 그를 보는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심지어 이중첩자라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주변에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그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돕는 것은 암호 해독팀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조안 클라크’(키이라 나이틀리).
앨런 튜링은 마침내 암호 해독기를 개발하고, 경우의 수를 좁혀 결국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에니그마’를 해독하는데 성공한다.
”기계도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여겼던 그가 고안한 ‘튜링 머신’은 인류의 최초 컴퓨터로, 우리가 흔히 인류 최초의 컴퓨터로 아는 ‘에니악’보다 2년 앞선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인공 지능의 기틀을 마련하고 인류 최초의 컴퓨터를 발명한 앨런 튜링의 위대한 업적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는 데서 한발 나아간 영화는 인류의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그의 인간적 고뇌와 비참한 말년까지 충실히 담아 냈다.
영국 드라마 ‘셜록’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농담과 진담도 구분하지 못하는 외골수 천재부터 기계와 사람, 영웅과 범죄자 사이에서 고뇌하며 괴로워하는 한 인간의 모습까지 ‘대체 불가능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시나리오 얘기를 듣고 먼저 찾아가 영화 출연을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수백 개의 다이얼과 수많은 붉은 선으로 이뤄진 암호 해독기에서 다이얼이 동시에 돌아가며 암호를 해독하는 모습도 꽤 흥미롭다.
영화는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참고로 영화 제목인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 튜링이 제시한 컴퓨터의 사고력을 증명하는 실험으로, 그의 이름을 따 흔히 ‘튜링 테스트’라고 한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컴퓨터인지 사람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면 컴퓨터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개념이다.
최근 개봉한 ‘엑스 마키나’가 ‘튜링 테스트’를 통해 인공지능(AI)의 진화를 그리고 있는 만큼 비교해 감상하는 것도 재미일 듯하다.
2월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14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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