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희망을 품은 이준 열사와 이상설, 이위종 지사가 이 열차를 타고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로 향했고, 고(故) 손기정 선수도 1936년 이 길을 따라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다.
만주와 시베리아를 근거지 삼아 일본군에 맞서 싸운 독립군도 이 길을 애용했다.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로 친선특급에 타게 된 조근송(60)씨는 “지금 한국은 섬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예전에는 만주 벌판과 시베리아까지가 한국인의 활동영역이었다”면서 “청진에서 무역업을 하시던 아버지도 만주어와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을 유창히 하셨지만 분단 이후로는 능력을 발휘할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섬나라가 되면서 우리나라는 상당한 기회비용을 지불해 왔다.
나희승 철도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남북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하면 부산-모스크바 기준 물류 운송기간이 14일에 불과하지만, 현재는 바닷길을 이용해야 해 30일 이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 역대 정부는 남북한종단철도(TKR)를 재건해 다시 한 번 한반도와 대륙을 철로로 연결한다는 구상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화해 모드로 접어든 남북한은 같은해 7월 장관급 회담에서 남북철도 연결에 합의했고, 2007년 12월 경의선 문산-봉동 구간을 오가는 화물열차가 56년만에 처음 상시운행되면서 ‘대륙철도망’ 구축은 눈앞으로 다가온 듯 싶었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6·15 선언은 시험대에 올랐고, 북한 역시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2차 핵실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등 도발을 멈추지 않으면서 경의선과 동해선 운행은 2008년말 다시 중단됐다.
대선 과정에서 남북철도 연결을 공약한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0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부산에서 출발해 북한,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구상을 제안했지만 전제 조건인 남북관계 개선은 이후 1년 9개월 동안 실질적 진전을 보지 못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드레스덴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의 기본은 남북 당국간 대화와 민간급의 교류협력이지만 이 부분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실현된 미래를 일반 국민들이 직접 체험해 보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친선특급은 우리 정부가 남북 관계를 개선해서 유라시아로 뻗어나가려는 열망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보이는 하나의 이벤트이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면서 “이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지난해 중순 이후 벌써 7차례에 걸쳐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정상회담을 했고, 국제 사회의 여러 공식석상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소개하고 지지를 얻어냈다”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역시 한국측이 노력을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내부적 이유로 호응을 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언제 때가 올지 모르는 만큼 한반도의 신뢰와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꾸준히 추진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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