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하지만 웃으며 가세요” 위안부 피해 김군자 할머니 영면
수정 2017-07-25 10:43
입력 2017-07-25 10:41
분당차병원·나눔의 집서 영결식 엄수…각계 인사 100명 마지막 길 배웅
23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향년 89세) 할머니의 영결식이 25일 오전 성남시 분당차병원과 광주시 나눔의 집 역사관에서 거행됐다.
연합뉴스
노제에는 더불어민주당 소병훈·임종성 의원, 강득구 경기도 연정부지사, 박종문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유족과 지인, 학생 등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나눔의 집 원행 스님은 추모사에서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해야 한다는 평소의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반드시 당신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올바른 역사와 인권을 알리기 위해 당당하고 용감하게 증언을 한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인권 활동가로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소병훈 의원은 “당신 자신이 가슴 아픈 역사의 피해자였으면서 누구보다 당당히 맞서 역사의 진실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며 “그 유산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추모했다.
노제에 참석한 이용수(90) 할머니는 “군자 씨, 우리가 왜 이렇게 당하고 울어야 합니까”라며 “너무 억울하고 분하지만 이제 편안하게 웃으면서 잘 가세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추모사가 끝나고 유가족을 시작으로 원행 스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졌으며, 추모객 중 일부는 흐느끼기도 했다.
1시간여 이어진 이날 노제에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할머니 9명 중 박옥선(94) 할머니만 자리를 함께했다. 다른 할머니들은 거동이 불편해 생활관 안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김 할머니는 1998년부터 20년 가까이 나눔의 집에서 생활했다.
고인은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모아 아름다운재단에 1억원, 퇴촌성당에 1억5천만원, 나눔의 집에 1천만원 등 생전에 모은 돈 2억6천여만원을 다 기부하고 떠났다.
분향 및 헌화에 이어 고인의 영정과 위패를 앞세운 노제 행렬이 나눔의 집 생활관 등 고인의 숨결이 어린 곳곳에 들렀다.
고인의 유해는 퇴촌성당에서의 마지막 미사 후 서울 양재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나눔의 집 법당에 안치된다.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생활하다가 17살의 나이로 중국 지린 성 훈춘 위안소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했다.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사망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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